[톨비밀레] 멀어진다는 것은
* G20 스포 및 개인적인 상상에 의해 작성된 글입니다.
* 해당 글의 밀레시안 아모르는 바나나홍차님의 자캐 이름입니다, 자캐를 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톨비밀레] 멀어진다는 것은
기사단으로부터의 연락을 받고 달려온 아발론 게이트에는 게이트가 다시 닫힌 이후로 볼 수 없었던 이들도 함께 있었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지키고 있던 아벨린과 알터에 나머지 셋까지 함께 완벽히 다섯으로 있는 그들을 보자니 괜스레 가슴이 뛰었다. 모인다는 이유라면, 그렇다면. 나는 그들에게 가던 빠른 걸음을 천천히 늦추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내 기척을 제일 먼저 느끼고 돌아본 것은 톨비쉬였다. 표정 없는 얼굴이 나를 발견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띠는 것을 보자 나도 모르게 똑같이 미소지어버렸다.
“어서 오십시오, 아모르 씨. 빨리 오셨군요.”
“어? 나 빨리 왔나? 그보다 오랜만이에요, 톨비쉬.”
“…아아.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이라는 말에 눈을 가늘게 뜬 톨비쉬는 이내 의미를 이해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진해졌다. 나와 톨비쉬의 인사에 다른 사람들도 돌아보며 인사를 건네 왔다. 일관성 있는 카즈윈의 짤막한 인사와 피네의 다정한 인사. 나는 그것들이 너무 오랜만이라서 나도 모르게 정말 밝은 얼굴로 크게 ‘응 안녕!’ 하고 외쳐버렸다. 외치고 나서야 후회가 가득했지만... 그 모습이 웃겼는지 톨비쉬가 얼굴을 돌렸고 알터는 대놓고 밀레시안님 귀여워요! 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 얼굴을 굳히며 쳐다보자 알터가 ‘헤헤...’ 하고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돌렸다. 두고 봐.
“그보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일거라 생각됩니다만.”
“그래요, 이렇게 저까지 부르고 전부가 모인 거라면 분명 중요한 이야기겠죠.”
톨비쉬는 굳게 닫혀있는 게이트를 흘겨보고는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들어올렸다. 어떤 내용이 쓰여 있을지 궁금해서 나도 모르게 종이를 따라 시선이 움직였다. 그건 아벨린과 알터도 다르지 않은 듯 했고. 카즈윈과 피네만이 평소와 다름없이 서 있을 뿐이었다. 톨비쉬가 큼, 하고 헛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동안 게이트를 여는 방법을 찾기 위해 수소문하고 자료를 수집해본 결과 드디어 결론을 찾아낸 것 같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나는 그의 이어지는 말을 들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 * * * * *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음으로 공명하고 있었다. 푸른색의 초목들이 우거진 숲 속에 팔라라의 빛을 받아 반짝이는 물들이 시원해보였다. 그 사이에 그것들과 하나인 듯까지 해 보이는 남자가 나무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듯 자연스럽게 풍경에 녹아들어 하나인 듯 해보였다. 그의 바로 앞에 쪼그려 앉아 지켜보고 있던 갈색 머리의 여인이 말을 걸지 않았다면 마치 동화 속의 왕자님처럼 잠들어있지 않았을까?
「일어나요, 톨비쉬.」
여인의 손이 반짝이는 금발을 쓸어내리듯 흘러내렸다. 남자는 그녀의 말이 키워드인 마냥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초록빛의 바다를 담은 것 같기도 하고 청명한 하늘의 색을 담은 것 같기도 한 연한 하늘색의 눈동자가 잠에 취한 체 드러났다. 잃은 초점이 맞춰지고 여인의 눈동자와 허공에서 시선이 엮이자 무표정했던 얼굴이 밝아지며 미소를 머금었다. 자신의 머리를 쓸어내리는 손등을 겹치듯 잡아 제 쪽으로 끌어당기자 여인이 힘없이 품으로 허물어져왔다. 품 안의 여인을 다정하게 끌어안으며 이마에 부드럽게 입 맞춘 남자가 입을 열었다.
「본인의 일을 하는 것도 귀찮아하시는 분이 여기까진 어쩐 일 이십니까.」
「그냥 지나가던 길에... 라고 하면 안 믿겠지? 당신이 있으니까.」
「이거... 영광이라고 해야겠군요.」
여인이 키득거리며 남자의 품에서 떨어져 나와 자리에서 일어섰다. 구겨진 정장의 끝을 털어내듯이 피고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남자, 톨비쉬에게로 손 내밀었다. 내밀어진 여인의 손을 잡고 일어난 톨비쉬가 계곡 쪽을 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뒤 따라오는 여인의 기척을 느끼며 그는 어딘가 슬퍼 보이는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따라 밝은 팔라라의 태양이 가슴이 아릴만큼 눈 부셨다.
「게이트를 열 방법은 찾았어요?」
「....아뇨, 아직 찾고 있는 중입니다.」
「무리하지 마요. 힘들 텐데.」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한 여인은 앞 서 가는 톨비쉬의 등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자신의 말을 듣는 듯 하면서 한 귀로 흘려버리겠지. 지금 그가 벌려놓은 거리만큼은 아무리해도 가까워질 수 없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처럼 다가가면 멀어지고 손 내밀면 손 내민 만큼 물러났다. 제발 나를 봐줘요. 여인은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입술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네,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당신은 언제나 그래. 걱정하지 말라 이야기하지. 분명 다정한 어조인데도 딱딱하게 들리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자신과 그 사이의 벽이 사라지기 전까진 계속 이럴 테지. 앞만 보고 있던 톨비쉬가 어느 정도 걸어가더니 발걸음을 멈추고 뒤 돌았다. 여인은 자신도 모르게 거리를 지키며 자동적으로 그를 따라 멈춰 선 뒤 한 번 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연하늘색의 눈동자가 하늘을 지나쳐 여인에게로 닿았을 때 톨비쉬는 자신을 바라보는 상처받은 눈동자에 손을 내밀려했다. 자신이 정한 선을 넘으려는 자신의 손을 주먹 쥐어 막으며 그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모르.」
그는 조용히 여인의 이름을 읊조렸다. 여인, 아모르는 톨비쉬의 말에 눈을 감았다 뜨며 왜 부르냐는 듯 뚱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삐진 것 같아 보이는 아모르의 얼굴에 톨비쉬가 한 발 한 발 그녀의 앞으로 걸어왔다. 왜 그런 표정입니까? 자신을 걱정해주는 목소리가 마치 악마가 인간을 유혹하듯 달콤한 목소리에 저절로 넋이 놓였다. 아모르가 넋을 놓은 사이 눈 앞 까지 다가온 톨비쉬가 그녀의 어깨를 쥐고 오른쪽 귓가로 고개 숙였다. 볼을 스치는 머릿결의 감각이 간지러워 아모르의 어깨가 움츠러들였다. 가까이서 들려오는 그의 숨소리에 어쩐지 얼굴이 붉어지는 것만 같아 왼쪽 손을 들어 볼을 문지르며 아모르는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왜, 왜요? 할 말 있으시면 조금 떨어져서...」
「아모르.」
「..... 왜요.」
「아모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평소와는 다르게 너무나도 아련해서 아모르는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개를 돌려 본 톨비쉬의 옆얼굴에 웃음기라곤 존재하지 않았다. 왜? 왜 그는 이런 표정을 짓는 걸까?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라지며 발끝에서부터 불안이 물 밀 듯 치고 올라와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다. 설마 아닐 거야, 그저 이 불안감은 기우에 불과하겠지. 그렇겠지. 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생각이 지워지지 않아서 아모르는 차라리 눈을 감기로 했다. 톨비쉬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이 불안감이 더욱 가증되어버릴 것만 같아서.
「제가 당신과의 약속을 못 지킬 것 같다면, 어찌하실 겁니까?」
「당신이, 약속을 못 지킨다구요? 저와 한 약속을요?」
눈을 감고 있던 아모르는 자신의 직감이 맞았음을 깨달았다. 이럴 때 만큼은 피해줘도 좋으련만. 톨비쉬의 무표정하던 얼굴을 떠올리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당신의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겠죠. 이해해요. 약속은 꼭 지켜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렇습니까....」
귓가에서 그의 얼굴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아모르는 천천히 눈을 떴다. 어깨를 잡은 손을 그대로 둔 채 허리를 펴고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톨비쉬의 얼굴이 팔라라를 등져 어두워져있어서 그녀는 그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저, 가슴이 먹먹할 뿐.
「제가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하더라도... 꼭, 믿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당신의 편이라는 것을.」
* * * * * *
아모르는 감았던 눈을 뜨며 코리브 계곡에서 보았던 톨비쉬와 지금의 톨비쉬를 겹쳐보았다. 평소와 다름없는, 자신이 알고 있는 다정하고 따스한 이였지만 어쩐지 그때의 그가 계속해서 떠올랐다. 느낌이 좋지 않아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엄지손가락을 입에 물고 손톱을 물어뜯었다. 톨비쉬의 말은 결국 그거였다. 문을 열기 위해서는 조각들을 대신할 만큼의 신성력이 필요하고, 그것은 자신들의 모든 것을 털어 넣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일단 그러기 위해서는 조각들이 봉인되어 있었던 제단으로 찾아가 남아 있을 신성력들을 끌어 모아야 한다고. 확인해보니 제단에는 아직 미약하게나마 신성력들이 남아 있었다고 했다. 조각들을 오랫동안 봉인해서 그런지, 아니면 봉인을 위해 모아뒀던 신성력들이 남아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그것들은 각 자 조장들이 맞는 제단으로 가서 모아오면 된다고 했다. 마지막은 그들과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자신이 메꿔야하니 이 곳에서 알터와 남아 있어달란다.
“좋아요. 선지자들도 없으니 빨리할 수 있겠죠. 기다리고 있겠어요.”
“고맙습니다, 아모르 씨.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가죠.”
조장들이 떠나고 휑해진 게이트 앞에 남은 아모르는 알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알터가 방긋 웃으며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를 건네 왔다. 걱정이라니, 그 다운 말에 그녀는 실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괜찮아요, 다만 걸리는 것은.... 말끝을 흐리는 아모르에 알터가 의아하게 바라봐온다. 순진한 소년 같은 얼굴에 아무것도 아니라며 손사래 치곤 굳게 닫혀있는 문 앞 계단에 걸터앉았다. 턱을 괴고 앉아 아직도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는 알터에게로 손짓하고 옆을 두드리며 앉으라는 몸짓을 취하자 머뭇거리며 눈을 이리저리 굴려댔다. 한 번 더 해보이며 얼굴을 살짝 찌푸리자 그제야 허겁지겁 다가와 옆 자리에 앉는다. 조심스럽게 들고 있던 무기를 내려놓곤 굽힌 무릎 위에 공손히 두 손을 올려놓은 뒤 아모르에게로 고개를 돌린 알터가 빙긋 웃었다.
“ 아모르님은 정말 다정하신 것 같아요.”
“ 제가요? ... 그렇게 보여요?”
“ 네! 언제나 그러셨는걸요. 항상 친절하시고, 모두를 위하시고... 그래서 더 잘해드리고 싶어요. 더 멋져요. 아모르님한테선 빛이 나는 것 같아요.”
“ 알터는 항상 제게 좋은 말만 해주는 것 같네요.”
“ 전부 진짜인걸요. 아모르님이 멋진 것도, 빛이 나는 것도, 친절하신 것도. 전부요!”
그래서 다가가지 못하고 바라만 보지만요. 알터의 끝말은 바로 옆에 있음에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작았다. 아모르는 그런 그의 말에 어쩐지 마음 한편이 환해지는 것 같아 팔을 벌려 알터를 끌어안았다. 고마워요, 당신 덕분에 조금 나아졌어요. 진심이 담긴 목소리에 품 안에 안긴 채로 무언가를 꾹 참는 듯 한 미소를 지으며 알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괜찮아, 이 정도로 만족해. 속에 담긴 감정을 깊은 곳까지 눌러 담으며 그는 아모르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따뜻한 사람. 자신이 동경하는 사람. 힘이 될 수 없더라도 최선을 다해 지켜주고 싶은 사람.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은 알터는 혹시라도 오해할까봐 수첩을 꺼내 들어보이곤 안 보이도록 몸을 틀어 감싸 자신이 느낀 것을 적어 내려갔다. 수첩에 글을 적어내려가기 시작한 알터를 본 아모르는 그가 마음 놓고 쓸 수 있도록 정면을 바라보다가 문득 고개를 뒤로 젖혀 게이트 문을 바라보았다. 조각들이 박혀있어야 할 곳이 텅 비어버린 문은 열쇠를 잃어버려 자물쇠를 열 수 없는 것 같아보였다. 자물쇤 무력으로 열겠지만. 과연 이 문을 열쇠 없이 열 수 있을까? 진품이 아닌 모조품으로? 만약 실패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다음 방법을 톨비쉬는 알고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좋지 않은 생각들에 그녀는 문을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게이트 입구 쪽을 쳐다보았다. 누구라도 어서 빨리 와줬으면, 하고 생각했다.
“ ....? ...! 알터, 톨비쉬에요!”
“ 아... 앗! 그렇네요! 톨비쉬님!!!”
입구 쪽으로 보이는 인영이 이 쪽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금색의 머리카락이 그가 톨비쉬라는 것을 알려왔다. 아모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알터 역시 글을 적고 있던 수첩을 허겁지겁 품안에 집어넣고는 무기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 앞으로 다가온 톨비쉬가 걸음을 천천히 하더니 약간 상기된 얼굴로 미소 지으며 알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향한 미소에 알터가 움찔하며 톨비쉬의 앞으로 나왔다.
“ 죄송하지만 알터, 잠깐 자리를 좀 비켜주겠습니까? 게이트를 여는 것 관련으로 아모르씨와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 아, 네! 알겠습니다! 아모르씨 좀 이따 봬요!”
“그래요, 이따 만나요 알터.”
톨비쉬의 말에 알터가 아모르를 향해 인사하곤 게이트 입구 쪽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알터의 모습이 보일 듯 말듯 해졌을 때야 그 모습을 지켜보던 톨비쉬가 아모르에게로 몸을 돌렸다. 돌리던 순간에 빠른 속도로 사라진 반짝임을 놓치지 않은 아모르가 눈을 가늘게 뜨고 갸웃거렸다. 기분이 갑자기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대체 톨비쉬는 어떤 말을 해야 하기에 알터를 물린 것일까? 궁금함을 못 참은 아모르가 입을 열려는 순간에 톨비쉬가 아모르를 향해 다가와 강하게 끌어안았다. 졸지에 톨비쉬에게 안겨버린 아모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내뱉으려던 말을 삼켰다.
“미안합니다, 아모르씨.”
“당신이 뭐가 미안해요?”
“약속을 못 지키는 순간이 지금일 것 같아서... 정말 미안합니다.”
“그건 괜찮다고 말했잖아요. 그보다 이 문을 열기위해서 저와 할 이야기가 뭐죠?”
게이트를 바라보는 톨비쉬의 눈이 반짝였다. 아모르는 품 안에 갇힌 체 그의 눈빛을 볼 수 없었고,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톨비쉬가 ‘게이트의 문을 열기위해선 당신이 필요합니다.’ 라는 말을 하며 날카로운 것이 등에서부터 자신의 심장을 관통했을 때조차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날을 타고 흐른 핏방울이 톨비쉬의 손목을 따라 흘러내렸다. 처음엔 한 방울 흘렀던 것은 어느새 끊임없이 쏟아져 그의 소매를 적시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모르를 품에서 떼어낸 톨비쉬가 슬픈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문을 열기위해선 이 방법뿐입니다.”
그녀의 몸에서 흘러내린 피가 바닥을 적셨다. 아모르의 몸이 앞으로 무너지며 톨비쉬에게 기대듯 쓰러지려는 것을 어깨를 잡아 세운 그가 조심스럽게 안아 올려 문 앞으로 걸어가 아모르를 눕혀놓았다. 눕혀놓은 뒤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한발자국 물러선 그는 슬픈 표정을 짓고 있으면서도 그녀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쳐다보기만 했다. 아모르는 힘겹게 ‘왜...?’라고 입을 열어 질문했다. 톨비쉬, 어째서, 나를? 그녀의 떨리는 눈동자에 시선을 맞춘 톨비쉬가 고개를 젓고는 문 앞에 고이기 시작한 피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피가 어느 정도 고였다 생각했을 때, 그는 자신의 신성력을 피에 집중해 폭발 시켰다. 흐려지는 시야로 소리 없이 푸른 섬광이 번쩍였다. 그리고 아모르는 조각이 없어 비어있었던 부분이 푸른색과 붉은 색으로 뒤엉켜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설마, 하는 순간 신성력이 담긴 아모르의 피와 톨비쉬의 신성력이 뭉쳐 조금씩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고 있었다.
“ㅌ..톨...비..쉬...”
“고맙습니다, 아모르. 당신 덕분에 문을 열 수 있었습니다.”
“.....ㅇ...왜....”
왜 당신은 고맙다면서 나를 두고 문을 향해 걸어가는 거야? 차마 말이 되어 나오지 못한 것이 입안을 맴돌았다. 아모르는 자신을 넘어 열리고 있는 문을 향해 걸어가는 톨비쉬의 뒷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혼자 가는 거야, 톨비쉬? 그리고 그녀는 그 의문을 곧 풀어낼 수 있었다. 문이 열리고 나서 검은 저 편 사이로 주황색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이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걸어 나오고 있었으니까. 그녀는 톨비쉬의 앞까지 걸어 나와 목에 팔을 두르고 입 맞췄다. ‘늦었다고, 당신.’ 교태 섞인 목소리에 톨비쉬가 손을 들어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아모르가 눈을 부릅뜨며 그 둘을 쳐다보았다.
“뭐야 저건, 죽어가는 중? 흐응.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걸? 당신에게 반했나봐~?”
“문을 열기위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브릴루엔.”
“그래도 말이야... 나는 내 것을 누구와 공유하는 취미 따윈 없다구~”
“왜...왜...어째서....? 큭, 톨비쉬... 어...째서....?”
너무나도 연인 같아 보이는 그 모습에 아모르는 질문밖에 할 수가 없었다. 가슴에 또 다른 상처가 났다. 아마 다시는 치유하지 못 할, 그런 커다란 상처가. 뱃속에서부터 분노가 끓어올랐다. 그것은 곧 톨비쉬에게 안겨있는 브릴루엔을 향했다. 어째서야? 어째서 가버리는거야? 힘겹게 손을 들어 가방 안에서 작은 회복 포션을 꺼내들어 마신 아모르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허망한 눈으로 톨비쉬를 쳐다보았다. 등지고 있던 톨비쉬가 아모르의 시선을 느끼고 뒤 돌았다. 뒤 도는 순간에 마주친 아모르의 눈동자는 톨비쉬를 향해 어째서 나를 떠나가느냐, 당신이 대체 왜 거길 있는 거냐 라는 듯 한 의문과 질책을 담아 향하고 있었다. 톨비쉬가 여느 때와 다름없는 미소를 지으며 아모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어째서... 라, 당신은 왜 어째서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아모르 씨.”
“왜... 왜긴... 왜... 멀어지는거야...? 브릴루엔은, 그 자는 우리의 적이잖...아...!”
“멀어져? 적? 이상한 소리를 하는 군요. 한 번도 가까웠던 적이 없었는데 어째서 제가 당신에게서 멀어지는 거죠? 멀어진다는 것은 가까웠던 사람들이 멀어질 때나 쓰는 말이 아닙니까? 그리고 브릴루엔 양은 적이 아닙니다. 아, 물론 저에 한해서요.”
톨비쉬의 미소는 더 이상 따뜻하지도 않았고 부드럽지도 않았다. 그것은 어리석은 밀레시안, 어리석은 여인을 향한 냉소를 띄고 있었다. 아모르는 몸과 마음이 얼어붙어가는 것을 느끼며 입을 다물었다. 육체적인 고통보다 그의 말에 상처나버린 가슴이 너무나도 아파왔다.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가슴을 움켜쥐며 그녀는 고개 숙일 수밖에 없었다. 거짓말, 거짓말이라고 해줘, 톨비쉬.
“거짓말....”
“물론 당신과의 약속을 어긴 건 죄송합니다만. 여기서 당신이 죽는다면 어쨌든 한 번의 생이 끝나는 거잖습니까? 죽었다, 라는 것은 제가 함께 해드리는 마지막입니다. 이런 이런, 그럼 제가 약속을 지킨 게 되는 거였군요.”
“아냐... 톨비쉬. 그럴리가 없어...”
“즐거웠습니다, 아모르씨. 저 편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다른 이들과 함께 오십시오.”
안고 있던 팔을 푼 브릴루엔이 톨비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검을 뽑아 들고 아모르의 앞으로 다가왔다. 브릴루엔이 무슨 행동을 하려는지 예상이 갔지만 아모르는 자신과 그녀를 쳐다보고 있는 톨비쉬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톨비쉬의 검이 자신의 심장을 관통하고 반으로 갈라버릴 때 까지 그녀는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차갑게 얼어붙은 눈동자를.
“..... 아.”
자신이 뒤로 넘어갈 때 미세하게 흔들렸던 눈동자를.
* * * * * *
「좋아요, 믿어줄게요 톨비쉬.」
「정말 입니까? 제 말, 믿어주시는 겁니다?」
「당연하죠. 당신이 내게 거짓말하리라 생각하지 않아요. 아까도 말했 듯, 이유가 있는 것일 테니까요.」
톨비쉬가 환하게 웃으며 다시 한 번 자신을 끌어안아왔다. 아모르는 아무런 반항도 없이 그의 품에 안기며 미소 지었다. 믿을게요, 당신이 그럴 사람이 아니란 걸아니까.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