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존] Fiction
* 많이 짧습니다. 단편에도 못 미치는 단편......이라고 보시면 수월하겠네요.
* Only, Sherlock x John 입니다.
[Sherlock x John] Fiction
w. 지월현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나의 소리에만 몰두하면 무엇도 들리지않는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모습은, 그의 목소리는 그 무엇으로도 막을 없었다. 잠이 드는 순간에도 음식을 먹는 순간에도 병원에 나갔다 퇴근하는 순간에도, 다른 이들과 이야기를 하는 그 모든 순간조차. 그가 없는 221B 플랫은 조용하고 적막했다. 그가 있을 때에도 시끄럽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예상외로 자신이 느끼는 적막감은 그가 없는 지금에서야 커지는 듯 했다.
‘오, 존. 몇 번을 말하는거지만 자네의 타이틀은 봐주기가 어렵군.’
‘……셜록, 내 블로그는 내 이야기를 쓰는 곳이야.’
그와 함께하며 겪은 일들이 적혀져있는 내 블로그는 어쩌면 십 년이 지나 열어 볼 추억의 상자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가끔 찻잔을 기울이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하며 옛 과거를 회상하며. 그의 상대방을 전혀 배려하지않는 말들이나 놀라울 정도의 추리력으로 사건해결이라던가, 먹으라고 해야만 밥을 챙겨먹는 식습관이나, 나 몰래 숨겨놓는 니코틴 패치들을 찾아내는 것이나, 셜록이 자신에게 문자를 보낼 때 더이상 SH를 붙이지 않는 것, 모두. 그의 죽음까지도.
‘존. 자네가 아무리 이렇게 우유를 냉장고에 꽉꽉 채워두고 매일같이 마신다하더라도 키는 크지않아.’
‘셜록! 뭐하는건가! 우유가ㅡ’
‘그보다 내가 실험하던 것들은 대체 어디로간거지? 나는 우유를 얼마나 마셔야 자네 키가 크는가를 실험하고 있지 않았어.’
‘무슨 개소리야!’
냉장고에서 우유가 사라지면 다시 채워넣 듯이 가끔 플랫에 들리면 그가 있기를 바라는 자신의 감정에 헛웃음이 나온다. 혹시, 혹시라도 플랫의 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가서 그와 자신의 공간으로 향하는 문을 열면 ‘음. 존, 하나도 변하지 않았군. 그렇게 우유를 마셨는데 키는 1cm도 자라지않은 것도.’라고 그가 말을 건네오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혹시는 혹시일 뿐이다. 자신이 앉아있는 이 곳의 주인은 돌아오지않았다. 앞으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그리고 자신은 혹시라는 생각만을 되풀이하며 이 소파 위에 앉아있을 것이다. 무엇으로도 그를 지울 수 없다면 고통스러울지라도, 실망할지라도 그를 생각하는 것 밖엔 방법이 없으니까. 아, 그러고보니 꿈에 그가 나왔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정말 한 대 쳐버려도 모자랄만큼 여느 때와 다름없는 얼굴로. 자신을 향해 ‘내가 죽었다고 믿은건가, 왓슨 박사? 그러니 자네는 아직도 멀은 걸세. 이 셜록 홈즈가 죽었을리가 없잖나. 왜 우는건가?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살아 돌아와서 말을 거는게 너무 감격스러운건가. 아니면 이 내가 보고싶었던건가. 물론 둘 다겠지. 뻔히 보인다고.’ 라며 내뱉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무조건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상체를 일으켜 그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으며 ‘셜록, 셜록, 자넨가? 진짜 자네야? 죽지않았어?’ 라고 내뱉은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그를 향한 그리움이었을지도 모른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 혹시라도 그럴리없지만 자신의 손에 남아있던 온기는 그의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자신의 손이 따뜻한 것 뿐이었을까. 그가 살아있음에도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길 꺼려한 것이었다면 혹시라도 좋으니 그것이 그의 온기라고 믿고싶다. 영원히 나와 마주하지않는다 하더라도. 그렇다면 적어도 그가 살아있는 것이니까.
‘사람은 어차피 죽습니다, 마이크로프트.’
‘물론 그들의 수명은 길지않으니까요, 존 왓슨 박사.’
‘셜록이 죽은 건…’
‘그와 더이상 함께 할 수 없는 것이 슬프지않습니까, 박사? 이미 그렇게 그에게 물들어버렸는데.’
‘하지만 박사, 당신은 물들었지만 물든게 아닙니다. 제 동생이ㅡ 이유를 알 것 같군요.’
예전의 자신이라면 하지 못했을 말이다. 셜록이나, 그의 형 마이크로프트라면 몰라도. 물론 셜록과 자신이 함께 살면서 둘 다 서로의 영향을 전혀 받지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셜록은 좀 더 인간다워졌고, 자신은 좀 더 셜록스러워졌으니까-셜록스러워졌다는게 무슨 말이냐면, 좀 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이 아닐까한다.-. 그래도 셜록은 여전히 셜록 홈즈였으며 자신 역시 존 왓슨이었다. 천재 사설 탐정 셜록 홈즈와 그의 플랫 메이트 존 왓슨. 변하지 않을 문장이겠지만, 조금 고치자면 천재 사설 탐정이었던 셜록 홈즈와 그의 플랫 메이트였던 존 왓슨. 일까?
‘굿바이, 존.’
‘안돼, 제발.’
“ㅅ…셜록, 제발…”
S-L-O-W, S-L-O-W, 그렇게 사고가 돌아가고있었다. 자신의 눈 앞에는 하늘과, 그 하늘을 받치고있는 지붕, 그 위에 서 있는 셜록 홈즈ㅡ. 자신의 심박수가 급격하게 오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순간이, 그 1초가 마치 1시간이, 아니 24시간처럼 느껴졌었다. 안돼, 셜록-. 그건 아니야. 절대, 그래서는 안돼. 자네는 그런 사람이 아니잖나. 아직 살 날도 많이 남았어, 셜록. 자네가 해결해야할 사건들도 산더미일거고, 앞으로도 계속 생길걸세. 셜록, 그래서는 안돼.
“셜록……!!”
깜빡, 잠이 들었던 듯 싶다. 블로그에 포스팅하던 그대로 잠이 들어서 그런지 목이 뻐근했다. No, 까지 쳐진 자신의 글을 보다가 노트북을 덮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서, 샤워를 하지 않고는 찝찝함에 곤란할지도 몰랐다. 입고있던 옷을 옆에 던져놓고 욕실로 들어가 물을 틀었다. 미지근한 물이 쏟아졌지만, 자신의 체온이 상승해서인지 차갑게 느껴졌다. 탁, 탁, 타탁, 물이 타일을 때리는 소리에 자신의 머리로 쏟아지는 물줄기에 눈을 감았다. 이런 시간이, 얼마나 계속 되는 것일까.
“……Good Bye, John.”
머릿속에 박힌 체 떠나가지 않는 그의 말에, 그의 음성에 서글퍼졌다면 그것은 어쩌면. 속이 메스꺼웠다. 아무래도 빨리 씻고, 잠을 자는게 나을 듯해서 급하게 씻고 나가려는 찰나였다. 물이 타일을 때리는 소리가 아닌, 누군가가 자신의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 이젠 본능적으로 자신의 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끼며 꺼내놓았던 옷을 조심스럽게 입고 옷 속에 파묻혀있던 리볼버를 꺼내 손에 들고 발걸음을 옮겼다.
“No, No, 존. 그렇게 경계하지않아도 된다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리볼버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들은 듯 했다. 아니, 들었다. 자신이 미치지않은 것이라면 저기서 자신의 노트북을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은 유령이 아닐지도 모르고, 자신이 미쳐버린 것이라면 저것은 환영에 불과할것이다. 자신이 만들어낸, 자신의 심장이 만들어낸. 그러기엔 그의 모습이 너무나 선명하고, 자신은 잠들어있지않기에 불가능하지만. 그는 노트북을 들여다보는 시선을 떼지 않은 체 무언가를 치고있었다.
“언제까지 거기 서 있을건가, 존? 수건으로 물기조차 안닦고 그렇게 서 있으면 바닥이 물바다가 될지도 몰라. 게다가 자네 아무리 실내여도 감기 걸릴지 모른다네. 내 플랫 메이트에 주치의, 조수까지 겸하고 있는 이라면 당연히 알고있는거 아닌가? 응? 존.”
이 빌어먹을. 이를 악물고 주먹을 말아쥐었다. 저 인간을 어떻게 패면 잘 팼다고 소문이 날까, 저 인간을 어떻게 패면 잘했습니다 하고 레스트레드 경감과 마이크로프트가 ‘역시 왓슨 박사….’ 하고 감탄할까.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그에게 할 대답은 떠오르지조차 않았다. 저 앞에 앉아있는게 진짜 그인지조차 아직 제대로 인식되지않았고, 자신이 미쳐버렸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고 있었으니까.
“존, 존 왓슨. 혹시 그거 아나? 소설이나 영화에는 픽션이 가미되지. F-I-C-T-I-O-N. Fiction 말이야. 우리의 이야기가 자네 블로그를 보는 사람들에겐 하나의 영화나 소설처럼 느껴질거라네. 여기에 나는 그저 픽션을 가미시켜준 것 뿐이야. 셜록 홈즈는 죽었다, 라는 가설을 세워 이야기의 흐름을 좀 더 긴박하게, 애절하게 만드는거지. 어떤가?”
“셜…록.”
“왜 그러나, 존?”
“이ㅡ 빌어먹을 셜록 홈즈!”
물론 그 생각들이 전부 정리되기도 전에 자신의 머리와 몸이 따로 놀았다는 것, 아니 자신의 정신은 아직 생각하고 있는데 머리와 몸이 합심하여 그를 때렸다는 것은 어쩌면 그의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때문이 아니라, 그래 반가움의 표시일지도 몰랐다. 자신의 주먹질에 얼굴이 돌아갔으면서도 그게 아프면서도 입꼬리를 말아올려 웃는 그도 그걸 반가움의 표시로 읽었을테니까. 느릿하게 올라온 그의 손이 내 주먹을 감싸쥐고 노트북을 잡고있던 다른 손이 나의 허리를 감싸 끌어당겼을 때, 나는 오랜만에 그를 인식할 수 있었다.
“I`m Sorry, John. Back.”
셜록의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붉어지는 눈시울에 눈을 감았다.
“Welcome, Sherlock.”
그래서 존은 자신이 쓰다 만 No, 옆에 셜록이 적다만 미완성 문장을 조금 뒤에나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입고있던 코트를 집어던지고 소파위에 올라가 자신을 외면하는 방향으로 몸을 둥글게 만 셜록의 등을 보며 물을 수 밖에 없었다. 소파로, 셜록에게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자신의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가고있는 것도 모른체.
“셜록? L 다음엔 뭐지? 왜 점으로 마무리 지은건가. 응? 셜록, 말해봐. 자네가 쓴 저 문장의 L 뒤에 뭔가? 응? 왜 끝까지 쓰지않은건데? 셜록, 셜록. 그렇게 몸을 더 말고 소파로 파고든다고해도 내 목소리가 안들리는건 아니지않나, 그니까 말 좀 해봐. L 뒤에는 뭐지? 혹시 자네, 픽션이라는 단어를 당근과 채찍으로 혼동한 건가? 응? 내가 자네가 죽은 줄 알고 집 지키는 걸 혹 주인 없는 집 지키는 개ㅡ의 상황으로 받아들인건 아니지? 응? 그렇다면 완벽했어. 정말이지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속아넘어갔다고! 응? 셜록! …왜? 그 손은 뭔가 셜록. 와보라는건가? 이미 와있어. 셜록. 셜… 윽! 이봐, 갑자기 잡아당기면!”
“존, 반가운건 알겠는데 너무 시끄러운거 아닌가. 그리고 저 L은 자네가 생각하는 그 흔하디 흔한 Like라던가 Love가 아니야. 자네는 아직도 바보군.”
‘John. My FlatMate. My L....’
셜록은 자신이 누워있던 자리에 누워 잠들어있는 존을 보며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Delete, Delete, Delete, Deleteㅡ.
‘John. My FlatMate. My Life.’
Fin.
(공백제외 3825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