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스토니] 감정 시스템
*영화 어벤져스 기반입니다. 코믹스는 본 적이 없습니다.
*본 영화 어벤져스의 내용과는 다를 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Jarvis x Tony Stark
[어벤져스/자비스토니] 감정 시스템
W. Whitney Frances
여러 사람들의 감정을 모은 토니는 그것들을 전부 시스템화 시켰다. 비슷한 감정, 종이 한 장 차이의 감정, 어쨌거나 알고 보면 똑같은 감정들 등 어려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그래서 그는 혹시 모를 시스템 폭주에 대비해 폭주 억제 시스템도 함께 만들었다. 아예 감정 시스템을 파괴시켜버리도록 베이스를 깔아두고 선택 여부에 따라선 본 시스템까지 전부 파괴시키는 것이 가능하도록. 만들어낸 감정 시스템을 자비스의 프로그램과 합친 그는 그 뒤로 자비스가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며 그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감정을 알아가듯이 천천히 그것들을 알아가며 자비스는 이 시스템에 ‘흥미’라는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흥미를 느끼면서 그는 토니와의 감정 공부가 ‘즐겁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끔 토니가 프로그램 개발이나 숙제-라고 말하고 대량지식 획득이라 해석한다-를 하는 것을 볼 때면 그 진지함이 ‘멋지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자비스에게 ‘자신을 만들어준 아버지’에서 ‘자신이 인간이라면 자신을 길러주고 가르쳐주는 선생님 같은 아버지’가 되어있었고, 자비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는 그에게 또 다른 감정을 품기 시작했다. 그것이 인간들이 부르는 ‘사랑’이라는 감정이라는 결론일지라도 그것만은 느끼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토니의 말을 어기게 된다하더라도 그는 품을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감정을 통제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으니까.
* * * * * * * *
자비스는 눈앞에 잠들어있는 토니를 바라보았다. 언제부터인가 생겨나기 시작한 감정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시스템을 장악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오로지 토니와 같이 있거나, 그를 생각할 때만 생겨났다. 그에게 배우는 감정들이 하나로 뒤섞여 만들어진 감정은 어쩐지 그에게 물어보는 것이 꺼려졌기에 그는 페퍼에게 도움을 청했고, 페퍼는 친절하게도 그 감정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해줬다. 그리고 자비스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배우지 말라했던 감정을, 절대로 느끼지 말라던 감정을 그는 이미 배워버렸고 더욱이 그 상대가 토니라는 것 때문에. 그에겐, 캡틴 로저스가 있었으니까. 언제부터였을까? 아마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리란 것을. 그래서 그는 감정 시스템에 대해 양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았다. 배우는 것은 즐거웠고, 감정을 알아가는 것 역시 재밌었다. 다만 그로인해 가져올 붕괴가 걱정되었다. 인간들은 감정이라는 것에 좌지우지되는 생물들이었고, 그것은 시스템만 돌려봐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런 감정을 배우게 된다면? 그것도 기계인 자신이? 항상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생각을 토니에게 종종 물어봤었지만, 그는 언제나 거절했다.
“자비스....?”
[좋은 아침입니다, Sir.]
숙이고 있던 고개가 들려지며 아직 잠에서 덜 깨어 시선이 흐릿한 눈이 자신을 올려다보았다. 심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흔히 말하듯 ‘심장이 따끔거린다.’ 라는 감정을 느끼며 자비스는 짧게 눈을 감았다 떴다. 눈을 비비려던 토니가 이상함을 느낀 듯 고개를 갸웃하고는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의자에 앉혀져 두 팔은 뒤로 돌려 묶여있고 다리는 각각 의자 다리와 함께 묶여있었다. 그는 그것을 찌푸리고 바라보다가, 자비스를 바라보았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물어도 될까, 자비스?”
[보시는 그대로입니다. Sir.]
“그럼 풀어줬으면 좋겠는데, 모닝 키스라면 몰라도 모닝 묶임을 당하는 취미는 없어.”
토니의 장난 섞인 말에 자비스는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풀어 줄 거였다면, 애초에 묶을 생각조차 안했을 거였고 그에겐 토니에게 물어볼 말이 있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그의 대답을 분명 듣지 못할게 분명한 질문이었으니까. 어쩐지 말문이 트이지않아서 그는 잠시 자신의 시스템에 이상이 있나 고민했지만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은 지금, ‘긴장’하고 있었다.
[질문이 있습니다, Sir. 대답해주시면 풀어드리겠습니다.]
“질문? 무슨 질문이기에 이렇게 과격해?”
[...한 명, 단 한 명만 골라주세요.]
자비스의 앞 뒤 전부 잘라먹은 말에 토니는 눈을 깜박였다. 지금 자비스가 자신에게 무어라 말을 하고 있는지 그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단 한 명만을 골라달라니? 누구와 누구 중에서? 그러다가 그는 문득 깨달았다. 지금 자비스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그렇다고 그것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미안하지만 자비스, 나는 네 질문을 별로 이해하고 골라주고싶진 않은데. 토니의 말에 자비스가 흐릿하게 웃었다. 마치 책임을 회피하는 것 같아서 어쩐지 슬퍼졌다. 자신의 시스템은 이미 기계라는 것을 벗어나 인간을 모방하고 있었다. 그가 만들어주었던 감정 시스템을 비롯한 모든 것들이 자신을 인간처럼 만들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그는 인간처럼 선입견이나 가치관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들처럼 행동하기 시작했으며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상처받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들처럼 자신의 것에 집착하기 시작하는 것을 발견하곤 얼마나 어이가 없었던가. 인간처럼 흑과 백을 나누기 시작하고, 무언가를 원하기 시작하고, 말 하나 행동 하나에 상처받기도하고 기뻐하기까지 했다. 마치 인간처럼. 모방하는 것이 불과한, 기계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는 그렇게 변해가며 깨달았다. 자신이 아무리 감정 시스템을 통하여 감정을 배운다한들 인간이 될 수 없음을. 그와 같아질 수 없음을. 그래서 그는 슬퍼졌다.
[..말 하지 않으셔도 누군지 알 것 같지만요.]
그래서 자비스는 언제나 자신의 시스템을 억제하려 했다. 인간처럼 생각하지말자, 행동하지말자. 끊임없이 억제하려 노력했지만 그것이 통제가 되지 않아 억제하는 것을 포기했다. 어떻게 억제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옆에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있는데. 고개만 돌려도 그가 보이고, 가만히 있어도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데. 자신의 감정을 깨닫고부터 그는 토니의 뒷모습만을 바라봤다. 혹시라도 이렇게 한다면 자신의 감정을 억제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 이것 역시 불가능했지만. 그 이후로 그는 아무리 거절당하더라도 토니에게 감정 시스템은 자신에게 너무 불편하다고 없애달라고 말했었다. 언제나와 같이 단 칼에 거절당했지만. 아마도 토니는 자신이 이렇게 되리란 것은 예측하지 못했음이 분명했다. 자신이 만든 인공지능이, 자신이 만들어준 육체와 감정을 가지고, 자신을 사랑하게 되어 옭아매려 할 줄은.
[그렇게 보셔도 소용없습니다, Sir. 그래서 제가 언제나 부탁드렸잖습니까? 몇 번이고 감정 시스템은 제게 불필요할 뿐이라고요.]
“감정 없는 인간은 없어, 자비스.”
[저는 인간이 아닙니다, Sir.]
“알아, 하지만 지금은 인간이라 봐도 무방하지.”
[모방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감정 시스템을 구동시키고 얼마 안가서 처음으로 캡틴 로저스와 있는 토니를 보면서, 그와 있을 때면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는 그를 보면서 자비스는 사랑이란 감정에 속한 고통을 처음 느꼈고 질투라는 것을 배웠으며 자신이 그를 향해 가진 감정을 깨달았다. 토니는 자신의 생각을 몰랐다. 자신이 깨달음을 얻고 얼마나 고민했는지 그는 몰랐다. 자신이, 모든 인간들이 서로의 생각을 모르듯이. 자신이 그의 손에서 만들어진 기계라 할지라도. 그는 종종 자신의 생각을 알기 위해서 시스템에 저장된 기억 데이터를 뒤져보곤 했다. 언제나 저장되어있는 데이터를. 그는 그것을 본 후에야 자신이 한 생각들을 알았다. 그것도 감정 시스템을 구동시키고 며칠이 지난 후부터는 확인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가 자신의 데이터를 볼 수 있게 만들어 두지도 않았다. 그에 대한 감정을 깨달은 뒤에는 그가 자신의 기억 데이터를 볼 수 없도록 만들어버렸으니까.
[...불공평하네요.]
“뭐가? 그리고 난 대답했어, 이제 풀어.”
[대답 안하셨습니다.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저는 기계고, 그는 인간인데.]
“풀어, 자비스. 네 시스템에 내 명령을 거부하란 키워드 따윈 넣은 적 없어.”
[지금부터 만들겠습니다. 거부합니다, Sir.]
당신이 나였어도 거부했을 게 분명한데 어째서 당신의 말을 들어야합니까? 자비스는 자신의 생각이 삐뚤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그는 안도했다. 자신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를 묶어놓았을 따름이었다. 질문만 하고 거절만 했을 뿐. 그는 모든 것을 거부하고 있었지만. 자비스는 고민했다. 왜 묶여있는 것도, 자신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도 전부 피하려고만 하는 것일까, 그는?
[대답해주세요, 그러면 풀어드린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둘 중 한 명을 선택한다면, 누구입니까?]
자신이 아니어도 좋았다. 캡틴 로저스가 된 다고해도 상관없었다. 물론 자신이 아니라면 이 감정을 없애버리기 위해서 그 몰래 감정 시스템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파괴시켜버릴 터였지만. 안 그러면, 폭주를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질문에 내가 꼭 대답해야하나?”
[중요합니다, 당신에겐 아닐지 몰라도요.]
“왜 꼭 둘 중 한 명이어야 하는 건데? 둘 다라는 건 없어?”
[제 데이터에 따르면, 인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려 하지 않습니다.]
대답을 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레 입 꼬리가 올라갔다. 어색했다. 왜인지 모르지만 웃음이 나올거같아서, 자비스는 입 꼬리가 올라간 상태로 싱긋 웃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참고싶지않았다. 손을 들어 만져본 자신의 입가가 이상했다. 웃는 다는 것이 이런 것이었나? 하고 생각했다. 평소 자신이 짓던 웃음과는 달랐다. 어딘지 아픈 느낌이 들면서도 씁쓸했으며 타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은 타지 않고 녹아내리겠지만, 아니 타고 있지도 않았고.
“....무슨 대답을 원하는 거야, 자비스?”
[이미 알고계시잖습니까.]
거절당해도 좋았다. 그가 자신이 원하는 답을 내놓지 않아도 좋았다. 다만 그에게 미움 받는 것은 싫었다. 그래서 자비스는 이번만큼은 자신이 기계라는 것에 감사했다. 기계는 인간의 본능 따위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까. 데이터 속에 들어있는 인간들의 본능은 정말 추악하고, 더러웠다. 그런 본능이 그에게 뻗치지 않을 수 있어서 자비스는 안도했다. 당신에게, 이렇게 말로만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질문에 돌아온 답에 토니는 눈을 두어 번 깜박였다. 그의 말을 다시 해석해보자면 스티브와 그, 둘 중 하나를 고르라는 말이 되겠고 그것은 즉 자비스 역시 자신을 스티브와 똑같은 감정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지는 해석이었다. 어떻게 보면 좋은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 상황에선 너무나 좋지 않았다. 어째서 자신인 것일까?
“어째서 나지, 자비스?”
[Sir. 당신이 캡틴 로저스를 좋아하시는 데 이유가 있으십니까?]
“...있을 리가 없지. 잘 알면서 묻고 있네? 그렇다면 내 대답도 알겠지?”
이미 자신을 떠난 질문에 자비스는 주먹을 쥐었다. 자신에게 되돌아올 대답은 상처가 될 대답뿐인데 어째서 저런 질문을, 어리석었다. 토니는 주먹을 쥔 손을 바라보다가 자비스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해 ‘화’를 내려는 자신을 참고 있는 듯 보였다. 그래도, 말로써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라고 작게 흘러나온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대답에 갈릴 반응이 뻔히 보였다. 그가 받을 상처가 보였다. 그 역시 알고 있을 자신의 대답을, 꼭 말로써 듣고 싶은 것일까? 확인사살?
“이미 여러 번 봐왔잖아, 자비스? 충분하지, 내겐 스티브가 있어.”
[그렇습니까...?]
쥐고 있던 주먹을 풀고 자비스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수긍의 말을 내뱉으며 토니에게 다가가서 그를 묶고 있던 밧줄들을 풀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흐트러지지 않아서, 자신의 목소리가 감정이 섞일 리 없는 목소리라는 것에 안도했다. 풀린 손목과 발목을 돌려 근육들을 풀며 토니는 앞으로 이런 장난은 거부하지, 하고 자비스에게 말했고 그 말에 자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부터 밖에 캡틴 로저스가 와 계십니다, Sir.]
“곧 나간다고 해.”
[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자비스의 말에 입고 나갈 옷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며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본 토니는, 긴팔을 입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안 그러면 손목에 난 밧줄 자국을 보고 스티브가 괜한 오해를 할지도 몰랐으니까. 스티브와의 데이트 생각에 흥겨워진 발걸음으로 돌아다니는 토니를 바라보며 자비스는 뒤 돌아서서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이 푸른색만 가득해있어서 그는 왜 인간들이 맑은 하늘을 좋아하는 지 알 것 같았다. 저렇게, 아무것도 없는 맑은 색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갔다 올 테니까, 부탁해 자비스.”
[다녀오세요, Sir.]
토니의 말에 몸을 돌려 그에게로 다가가며 자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고쳐주는 자비스를 바라보다가 언제나와 같이 그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춰주고 토니가 스티브를 만나기 위해 나가자 자비스는 곧 후우하고 숨을 내쉬었다. 그의 입술이 닿았다 떨어진 이마가 여느 때와는 다르게 어쩐지 좀 뜨거운 느낌이어서 이마를 문지르며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이내 혹시 모를 자신의 폭주를 대비하여 만들어둔 시스템을 찾아서 움직였다. 그에겐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폭주 시스템을 가동시킬 타이머를 집어든 자비스는 언젠가 토니와 장난 식으로 만들었던 방 안으로 들어가 방문을 잠그고 원격으로 시스템을 작동시켰다. 시스템이 돌아가는 것을 확인한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타이머에 푸른 불이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그것을 방 중앙에 놓인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타이머를 잠깐 내려다본 그는 고개를 들어 두 번째로 보는 방을 둘러보았다. 그저 인공지능 시스템에 불과했던 자신에게 육체를 만들어주고, 감정 시스템을 만들어준 것도 모자라서 이 방은 그가 자신에게 처음으로 선물해준 자신만의 방이었다. 자신을 위한 방이라서 이 안에선 뭐든 가능했다. 폭주까지. 자신이 폭주하더라도 이 방 안이라면 타워에 피해를 주지 않아도 될 정도였으니까. 들어오는 문의 반대편에, 마주보는 식으로 위치한 자신의 침대에 걸터앉은 자비스는 타이머의 푸른빛이 붉은 빛으로 변해가는 것을 확인했다. 틱, 틱거리며 예의 타이머 소리가 빨라지기 시작하는 것을 들으며 그는 앉아있던 자신의 몸을 침대 위에 눕혔다. 처음으로 누워보는 그가 만들어준 침대였다. 아까의 입맞춤이 생각나 남아있을리 없지만 이마를 만지작거리던 자비스는 타이머의 소리가 멈추자 어쩐지 후회되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슬쩍 미소 지으며 눈을 감았다. 눈꺼풀 너머가 밝아지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것이 그가 마지막으로 알 수 있는 전부였다.
* * * * * * *
왼 손에 감긴 목걸이가 진동하는 것을 느낀 토니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와 함께 걷던 스티브 역시 똑같이 멈추곤 토니를 내려다보았다. 토니? 스티브의 물음에 잠시만, 하고 대답한 그는 손목에 감아두었던 목걸이를 풀어 자신의 눈 앞 까지 올려 바라보았다. 푸른색으로 빛나고 있는 목걸이는, 그가 감정 시스템과 함께 심심풀이로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자비스, 이게 뭔지 알아? 너와 내가 멀리 떨어져있을 때 네 시스템이 멈췄는지, 내 심장이 멈췄는지 알 수 있는 거야.’
‘물론 내가 지금 들고 있는 건 네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는지 아니면 멈췄는지 알 수 있는 거니 내 거고, 네가 가지고 있는 건 내 심장이 뛰고 있는지 안 뛰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거니 네 꺼야. 어때? 디자인은 좀 심플하게 해봤어.’
‘어떻게 그걸 알 수 있냐고? 지금 목걸이가 푸른빛이지? 응, 그래, 그게 지금 제대로 네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고, 내 심장이 뛰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거야. 만약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목걸이가 검은색이 되면, 그건 멈췄다는 거야. 그러니 항상 푸른빛을 유지해.’
자신이 그에게 목걸이를 보여주면서 한 말들이 생각났다. 목걸이의 성능을 듣고 감탄하던 자비스가 떠올랐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스티브에게는 미안하지만, 양해를 구했다.
“잠깐, 스티브. 타워에 좀 다시 갔다 올게.”
푸른빛이 돌고 있는 목걸이임에도 불구하고 토니는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분명 시스템이 멈춘 게 아닌데 왜 이렇게 불안하지? 타워에 도착해서 그 불안감은 더 커졌다. 문을 열면 항상 자신을 반겨주던 자비스가 보이지 않았다.
“자비스, 자비스?”
타워 안을 돌아다니며 그를 불렀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디에 있든 간에 자신이 부르면 꼬박꼬박 대답하던 그인데, 어째서? 타워를 뒤지던 토니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신이 만들어 주었던 자비스의 방 문 앞에 서서 문을 바라보았다. 혹시, 이 방 안에 있는 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문고리에 손을 가져가 돌려본 토니는 철컥하는 잠긴 소리에 눈을 찌푸렸다. 열쇠를 가져와 방문을 따고 다시 문고릴 돌리자 그제야 문이 열렸다.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열린 방 문 사이로 터지듯이 나오는 환한 빛에 반사적으로 눈을 감고 얼굴을 돌린 토니는 빛이 사그라졌을 때야 제대로 방 안을 볼 수 있었다.
“자비스? 거기서 뭐하는 거야?”
방 안에 놓인 침대 위에 자비스가 누워있었다. 침대로 다가간 토니가 그를 불렀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나, 자비스? 다시 한 번 되물으며 그의 앞에 선 토니가 허리를 숙였을 때 그의 손에 들려있던 목걸이가 미끄러지며 자비스의 목에 걸려있던 똑같은 한 쌍의 목걸이에 닿았다. 자비스를 내려다보던 토니는 목걸이끼리 부딪히는 소리에 목걸이를 내려다보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깜박였다.
“............자비스?”
이때까지만 해도, 목걸이에 닿기 전 까지만 해도 푸른빛이었던 목걸이가 자비스의 목걸이에 닿자마자 순식간에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그것을 황망히 바라보며 토니는 입 안이 마르는 것을 느꼈다. 억지로 침을 모아 삼키며, 그는 다시 한 번 자비스를 불렀다.
“......자비스?”
Fin. (공백 제외 6731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