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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binogi/N

[톨비밀레] 손을 잡은 순간에 To.이베님

* 트친이신 이베 @HiverLiel 님 생일 축하하며 짧은 축전

* 해당 글의 밀레시안은 이베님의 자캐인 [아워린] 입니다.

 

 

성벽에 기대어 앉아 작은 나뭇가지를 집어 들어 그림을 그려본다. 삐뚤빼뚤 그린 그림을 보며 어린 소녀는 덤덤히 중얼 거린다. 생일 축하해, 아워린. 또 한 살 먹었구나. 이번에도 혼자 맞는 생일이야, 기분이 어때?

모래 위에 그려진 케이크를 손바닥으로 없애버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어린 느낌에 맞지 않게 얼굴 위로 드러난 무심함이 어색했다. 쓸쓸해.

 

 

[톨비밀레] 손을 잡은 순간에

 

 

뚜벅뚜벅, 또각또각. 뚜벅뚜벅, 또각또각. 그리고 멈칫. 걸어가던 이가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려 뒤를 돌아본다. 움직임과 함께 금발이 얇은 포물선을 그렸다 내려앉는다. 연하늘색의 눈동자가 정확하게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이를 바라보았다. 어깨를 넘는 길이의 한 쪽 눈을 가린 백금 발을 가진 여인이 연하늘색의 눈동자와 마주하자 입 꼬리를 말아 올린다. 남자는 여인을 내려다보며 서류를 쥐고 있는 손을 들어 올렸다. ‘일하는 중이니 방해지마시오같은 느낌의 행동에 여인이 팔을 들어 올리며 어깨를 으쓱인다. 능글맞은 태도에 남자의 눈가가 좁혀졌다. 무심하게 당신들이 뭘 하든 신경 쓰지 않아요~ 로 일관하던 여인이 오늘따라 자꾸만 자신의 뒤를 쫓아다닌다. 마치 나는 당신에게 오늘따라 너무너무 관심이 있어요, 나를 좀 봐줘요, 내게 말 걸어줘요라고 하듯.

 

일 하는 거 안 보이십니까?”

, 보여요. 신경 쓰지 말고 일해요.”

이렇게 제 뒤를 따라다니시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 씁니까?”

어머, 그랬나? 미안해요. 고의는 아니었어-”

 

능글능글, 구렁이 담 넘어가듯 내뱉는 여인의 말에 졌다는 듯 고개를 저은 남자는 마음대로 하십시오 라고 이야기하곤 몸을 돌려 다시 목적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뒤도 안 돌아보고 앞만 보고 걸어가는, 나는 이제 당신과 대화하지 않겠소 하고 말하고 있는 남자의 등을 보며 여인은 다시 따라 걷기 시작했다. 오른 발을 내밀면 똑같이 오른 발을, 왼 팔이 흔들리면 똑같이 왼 팔을. 그림자처럼 남자를 따라하며 걷던 여인이 남자가 멈춘 곳을 바라보더니 이내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난다.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는 들어가는 게 금지된 구역이라서 차마 거기까진 따라갈 수가 없었던 거다. 현재 알반 기사단의 단장이 아발론 게이트에 있었기 때문. 언제 왔는지 어디서 왔는지는 모른다. 얼굴도 모른다. 그녀에겐 현 단장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애초에 다른 기사들은 알려주지 않는 터라 알터를 공략해 이리저리 구슬려봤지만 그 알터에게서도 나오는 답은 없었다. 짧게 한숨을 내쉰 여인은 사라지는 남자를 지켜보다가 게이트 입구를 향해 걸었다. 여기에 더 있을 이유가 그녀에겐 없었다. 남자가 나오기까진 오래 걸릴 거고 그것은 밤이나 되서의 이야기였다. 게다가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게 한 몫 했다. 항상 게이트 앞을 지키던 아벨린과 알터도 없었고 남자와 함께 온 카즈윈과 피네도 보이지 않았다. 전부 임무라도 나가버린 것일까?

게이트를 나와 커다란 나무 아래로 걸어간 여인은 나무에 기대어 앉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쩐지 그 모습이 마치 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릴 듯 위태로워 보여 그녀가 이곳에 미련이 없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듯 해보였다. 주위에 떨어진 돌멩이를 주워든 그녀는 언제인지 모를 적의, 지금까지의 자신이 했던 것처럼 바닥을 긁었다. 아래로도 긁고, 오른쪽으로도 긋고, 동그라미를 그려보고어쩐지 어릴 적의 자신으로 되돌아간 기분에 여인은 손에 쥐고 있던 돌멩이를 집어 던져버렸다. 쉽게 손아귀를 벗어나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돌멩이가 마치 자신이 잡으려 했던 것들 같아 씁쓸해졌다.

 

……어쩐지, 이번에도 혼자네.”

 

모든 것을 포기한 듯 한 어투로 말을 내뱉은 그녀는 자조적으로 웃으며 나무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어린 날의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속으로 생일 축하해, 아워린. 이라고 중얼거리면서.

 

*

 

아워린님, 아워린님일어나세요, 아워린님!”

 

앳된 소년의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 들었다. 여인, 아워린은 자신을 잡고 흔드는 손길에 속으로 숨을 삼키며 눈을 떴다. 자신이 깨우던 상대가 눈을 뜬 것을 확인한 소년이 어깨에서 손을 떼고는 밝게 웃으며 다시 내밀었다. 일어나요, 아워린님! 내밀어진 손을 잡고 일어난 여인은 옷에 묻은 풀들과 눈에 묻은 잠들을 털어내며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무슨 일이야? 하고 소년에게 물었다.

 

갈 곳이 있어요, 따라오세요! 얼른요!”

 

자의가 아니라 타의로 끌려가듯 소년의 손에 이끌려 다시 입구를 지난 아워린은 어두운 밤하늘을 등진 웅장한 게이트의 문을 보며 멍하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임무가 끝나고 돌아온 걸까? 왜 자꾸 자신을 끌어당기는 거지? 무슨 일 있나?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뒤죽박죽이 되어 끌려간 곳은 회의실이었다. 혹시 문을 열 방법을 찾아서 이렇게 불러온 걸까하고 생각하려는 찰나에 자신을 이끌던 소년이 자리에서 멈추더니 뒤로 휙 돌았다. 아워린과 마주한 소년이 생글생글 웃으며 잠깐만 눈을 감아주세요! 라고 말해 얼떨결에 눈을 감은 그녀의 눈 위로 무언가가 씌워졌다. 이게 뭐야, 알터하고 눈을 뜬 아워린은 어두운 시야에 혼란스러워졌다. 설마 안대가 씌워진 걸까?

 

비밀이에요. , 제 손을 잡고, 그렇게 조심히

 

소년, 알터는 연신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아워린의 손을 잡아 회의실 안으로 이끌었다. 조심조심 자신을 따라오는 것을 확인하며 안쪽으로 고개를 돌린 그의 시야에 자신들이 준비해 놓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 앉으시면 되요, 거긴 빈 공간! 여기요! 네네, 잘 했어요! 알터의 안내에 따라 회의실로 들어와 의자에 까지 앉은 아워린은 이제 벗어도 된다는 마지막 말에 눈을 감고 씌워져있던 안대를 벗은 뒤 다시 떴다. 깜빡깜빡. 흐릿한 시야로 익숙한 실루엣들이 보였다. 한 번 더 감았다 뜨자 시야가 밝아지며 그제야 모든 것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과 마주보고 서 있는 금발의 남자와 그의 양 옆으로 선 카즈윈과 피네, 아벨린과 알터를 바라본 아워린의 눈동자는 이내 회의실 테이블 위에 놓인 것을 보고 크게 떠졌다.

 

축하해, 생일

생일이라면서요? 축하해요.”

아워린! 생일 축하해! 깜짝 놀랐지?”

헤헤, 아워린님 생일 축하드려요!!!”

 

양 옆으로 터져 나오는 축하의 말에 그녀는 두근두근 뛰기 시작하는 가슴과 하얗게 비워져가는 자신의 머릿속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이게 꿈은 아닐까? 내 눈 앞에 놓인 저게, 정말로 내가 아는, 항상 바닥에만 그리던케이크 인걸까? 그런 걸까? 이 사람들이 내 생일을 축하해주고 있는 걸까? 어떻게 알고? 감동의 눈물, 이라거나 그런 건 없었다. 아니 애초에 이 상황 자체가 믿기질 않아서 아워린은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 돌처럼 굳은 채로 앉아서 눈만 깜빡거리는 아워린을 향해 금발의 남자가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알터에게 들었습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아워린양.”

 

남자의 말에 아워린은 번쩍하고 정신이 들었다. 양 손을 들어 자신의 뺨을 쳐 본 그녀는 얼얼하게 느껴지는 통증에 이것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볼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눈가로 눈물이 차올랐다. 그래, 통증에 눈물이 차오른 거다. 절대로 자신은 이런 게 기쁘거나, 너무 좋아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니야. 속으로 중얼거린 아워린은 흥, 하고 토라진 얼굴로 누가 이런걸 준비한다고 기뻐할 줄 알아요? 하고 말했다. 물론 그녀의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케이크 위에 꽂아진 초위의 불빛이 흔들렸다.

 

*

 

아침은 분명 일로 인한 거였습니다만, 저희가 보이지 않은 이유와 당신을 소홀히 한 것은 당신 모르게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의자에 나란히 앉은 남자가 변명하듯 입을 열었다. 그 광경을 보고도 당신의 말대로 그랬을 거란걸 모르는 게 멍청이가 아닐까? 아워린의 날카로운 말에 남자가 하하, 하고 웃었다. 이미 그녀의 톡 쏘는 말투라거나 시비를 거는 듯 한 내용들은 정말 그러기 위해서가 아니란 것을 알기 때문에 전혀 상처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귀엽게 느껴질 뿐이었고, 그만큼 안쓰럽게 느껴졌다. 밀레시안인 그녀가 겪었을 외로움과 고통은 이미 자신들의 조사로 전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안쓰러운 걸지도 몰랐다. 자신도 점차 그녀를 잊어갈테지, 남자는 조금 씁쓸해졌다. 그래서 그랬을지도 몰랐다. 지금부터 이어진 자신의 행동들은 그로 인해서였을지도 모른다.

아워린의 말에 짧게 웃고 입을 다문 남자가 의자에서 일어나 앞으로 걸어갔다. 그 행동을 바라보며 아워린이 고개를 갸웃하려는 찰나에 그녀를 등진 남자가 몇 발자국 안가 멈추더니 이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두워진 하늘에 이웨카와 라데카가 만나려하고 있었다. 그 옆으로 수놓아진 별들이 반짝거리며 그 만남을 고대하고 있기도 했다. 남자는 오늘따라 유독 눈길을 사로잡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아워린을 등진 체 입을 열었다.

 

나는 당신을 잊을지도 모릅니다, 아워린양. 물론 그것이 현재는 아니지요. 당신이 누군가가 자신을 잊는다는 것을 싫어하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나는 당신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다른 이들처럼 잊게 될 겁니다. 그리고 종국에는 당신이 누군지조차 모르겠지요. 그래서 생각해봤습니다. 알터처럼, 당신을 기록하면 어떨까 하고요.”

 

남자의 조곤조곤한 말투에 아워린은 가만히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똑같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잊을 거란 부분에서 울컥했던 마음은 이어지는 말들에 의해 가라앉고 있었다.

 

저는 당신을 잊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이 안쓰러워서 이런 것인지, 그저 제 이기심때문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중요한 것은 잊고 싶지 않은 만큼 잃고 싶지도 않다라는 거죠. 거기에 몇 가지 더 확실한 것은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제 이름이 좋다는 겁니다.”

……톨비쉬.”

 

하늘에서 시선을 떼고 게이트의 높은 곳에서부터 시선을 내린 남자, 톨비쉬가 뒤로 돌아 아워린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을 느낀 아워린 역시 톨비쉬를 마주 바라봐온다. 자신을 바라봐오는 여인의 무심한 벽안에 톨비쉬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앞으로 걸어가 한 쪽 무릎을 꿇고 손을 내민다.

 

제가 당신을 제 머리에, 심장에, 모든 것에 새길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겠습니까?”

 

 

Fin. 

 미포 3748자

 

헉 생축글인데 어쩐지 그냥 고백글인듯 생축글을 가장한 고백

이베님 22번째 생일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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