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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유정] 물 그리고 불

* 환상게임 2차 창작. 타스키=유익 / 치치리=유정 입니다.

 




[유익유정] 물 그리고 불



 

려다 본 하늘은 꽤나 붉은 색이어서 그는 작은 소리와 함께 몸을 말았다. 맑은 소리가 귓가에 울려오는 것을 들으며 천천히 눈을 감는다. 오랜만의 혼자라는 느낌은 꽤나 이상한 기분이어서, 예전 같았으면 벌써 눈을 감았을 자신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 뒤척이고 있었다. 꽤 오래, 혼자가 아니긴 했지만. 바닥에 닿은 몸을 통해 전해지는 한기에 결국 작은 한숨을 내쉬며 일어나 앉았다. 별 하나 보이지 않게 촘촘하게 짜인 구름그물에 걸린 하늘이 어두워 달빛조차 들지 않는 세상은 칠흑 같은 암흑에 점령당해 있어, 멍하니 눈을 깜박이는 순간에도 그것이 스며들어왔다.

 

히코우.

 

문득 떠오른 이름이 입안을 굴렀다. 다시는 볼 수 없다고 생각했던, 항상 후회만 남았던 이름은 더 이상 자신에게 과거를 슬프게 만들지는 않았다. 자신을, 그 누구를 원망하던 감정은 이제 타고 남은 재가 되어 바람에 흩날려버렸으니까. 사실은, 그래 아직은. 욱신거려오는 상처 위에 손을 가져다대었다. 그렇게 다시 만났어도 후회가 전부 없어질 리는 없었다. 차디 찬 물속에 가둬진 기분에 몸이 떨려왔다. 조금은 따뜻한.

 

……!”

 

기억 속을 헤집는 불길에 그는 눈을 크게 뜨며 들고 있던 석장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갑자기, ? 그저 따뜻했으면 하는 생각을 한 것뿐인데 어째서? 지금까지의 느낌들과는 다른 무언가였다. 모두를 대하는 감정과는 좀 더 다른, 어쩌면 그녀와그럴 리가 없겠지만, 그녀를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이봐!”

 

환청까지 들리는 건가? 멍하니 어두워졌다 밝아지는 시야에 어둠 속에 흔들리는 인영이 보였다. 환각인가, 아니 환청과 환각으로 치부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작게 웃고는 가면을 꺼내 얼굴 위에 썼다. 기억 속의 불꽃이 현실로 나와 자신을 향해 붉은 혀를 날름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타스키.”

뭐야? 자려고한 걸 내가 방해했나?”

거기까진 아닌데. 무슨 일이야?”

잠이 안와서 둘러보던 차였는데.”

 

불꽃은 자신의 옆을 멋대로 차지하더니 주위를 여러 번 둘러보곤 장난기 담긴 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두드려왔다. 물속에 가라 앉아 있다고 생각했던 느낌이 불에 타 없어지는 것만 같았다. 이상한 기분. 그는 두어 번 눈을 깜박였다.

 

가끔은 모두가 같이 있을 때가 그립다구. 아니, 가끔보단 많이 지만.”

그리움이라는 거다.”

나도 그 정돈 안다고! 치치리는 이런 생각이 안 드는 건가?”

항상 시끌벅적했는데 안 그럴 리가 없지.”

 

하나 둘 떠오르는 물방울에 갇힌 모두를 보며 그는 불꽃에게 웃어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라고. 불꽃을 타오르게 만드는 것은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 역시 그렇지?”

그래. 둘 만으론 부족하다는 거다~”

 

자신의 말에 너무하다며 투덜거리는 이를 보며 뒤로 드러누웠다. 어느새 서서히 구름이 걷히며 노란 달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너무한 게 아니라 당연한 거다. 작게 대꾸하는 그에 불꽃이 사납게 추켜올려간 눈매를 일그러뜨리며 똑같이 옆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본다. 지금 이 상태도 나쁘지 않으니까. 이상한 기류를 타는 감정을 손으로 꾹 눌러 마음 속 깊이 담았다. 아직은, 아니 앞으로도 밖으로 나와서는 안 될 것 같은 감정이었다. 그래, 그는 간단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저 물에 반대되는 불이 떠올랐을 뿐이라고.

 

움직임이 줄어들고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왔다. 하늘만 보고 있던 타스키는 옆으로 돌아 누워 미동 없이 잠들어 있는 그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잠이 안 온다는 것은 거짓말. 손을 들어 입가를 문지르다 조심스레 그를 향해 뻗어본다. 스치듯 걸려오는 거짓 피부가 의외로 따스해 망설임 없이 검지를 펴 상대의 입술을 훔쳐내듯 쓸어내곤 다시 빠르게 거둬들였다.

 

할 말이 있었는데.”

 

오늘도 못 하겠네. 머쓱한 표정으로 온기가 남은 검지를 손바닥 안으로 밀어 넣어 마치 그것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강하게 말아 쥔다. 시간은 많으니까 괜찮아. 언젠가 저 가면을 제 손으로 벗겨내는 것을 상상하며 다시 빙글, 하늘을 향해 돌았다.




미포 1472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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