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상게임 2차 창작. 타스키=유익 / 치치리=유정 입니다.
[유익유정] 혼자 보다는 둘
「안녕이라는 거다, 타스키.」
「…아아, 그래. 잘 가라고.」
미련 없이 뒤 돌아 걸어가는 뒷모습을 쳐다보며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갖는 자신을 비웃었다. 한 번쯤은 다시 돌아볼 수 있건만 그는 이내 타스키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끝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언제까지나 함께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음에도 그의 옆에 남고 싶은 자신이 이상했다. 이게 뭐냐, 미아카와 타마호메랑 다를 게 뭐냐고. 괜히 입술을 깨물며 애꿎은 태양만 노려보았다. …그래, 다른 게 있다면 눈물이 없다는 걸까.
「……치치리.」
손 안에 들어오지 않는 바람 같은 남자. 쥐려하는 자신만 타오르고, 그는 손쉽게 사이사이로 빠져나가 버린다. 바람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흐르지만, 불은, 불은.
「불은 바람을 만나면 더 타오른다고.」
어디든, 함께라면 말이지. 남자가 걸어갔던 방향을 쳐다보다가 손에 들린 부채를 강하게 쥐었다. 마지막 인사 같은 건 없어, 헤어짐이 있으면 만남도 있는 거랬다. 그는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으며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에 앞을 향해 걷던 그는 걸음을 멈춰서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넓게 펼쳐진 평야에 저 멀리 보이는 마을을 확인하고는 다시 움직인다. 모든 것을 털어버린 사람처럼 발걸음이 가벼워보였다.
「어디로 가야하나…」
여우처럼 휘어진 눈매 밑의 굳게 다물린 입이 작게 열리며 침음이 새어나왔다. 막상 타스키와 헤어져 길을 걸어오긴 했지만, 태극산으로 가는 게 제일 나을까 싶으면서도 아직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 정처 없이 걷고 있을 뿐이었다. 원래라면 태극산으로 갔을 텐데, 어째서일까. 가슴 속을 맴도는 작은 기류가 자신이 어디로 가야할지 망설이게 만들고 있어서일까.
「…리……치…리!」
홀로 남게 된 자신은 전과 다르게 어색했다. 같이 있던 시간들이 그렇게 길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만큼 기대고 있었다는 얘기가 되는 걸까 싶어 웃음이 나왔다. 혼자가 편했던 날은 어디 가고. 손에 쥐고 있던 석장을 흔들어 부딪치는 소리로 생각을 정리한 그는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야! …이, 기다리라고! 어이, 치치리!」
「……타스키?」
익숙한 외침소리와 함께 가사를 잡아 끄는 손길에 치치리가 뒤를 돌아보았다. 눈앞을 스치는 타오르는 듯 한 불꽃이 낯익었다. 전력을 다해 달려온 듯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무릎 위에 손을 올리고 허리를 숙이고 있는 타스키에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겨우 숨을 돌리고 치치리를 올려다보며 무릎에 두었던 팔을 올려 그의 손목을 거칠게 휘어잡았다.
「읏, 뭐하냐는 거다?」
「역시, 안된다고. 제엔장!」
「이봐, 타스키?」
피가 나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입술을 깨물며 타스키가 허리를 폈다. 여기까지 뛰어오면서도 계속 생각했고, 그리고 두려웠던 감정들.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것들은 기어코 자신을 그의 앞에 서게 만들었다. 잡힌 손목을 쥐고 있는 손아귀의 힘이 억세 치치리는 미약하게 얼굴을 찌푸리며 팔을 한 번 흔들었다. 타스키? 다시 불러보지만 여전히 묵묵부답.
「…너는 왜!」
「…?」
「으으악! 모르겠다고! 됐어! 혼자 가게 둘까보냐?」
갑작스런 외침과 혼자 내려버리는 독단적인 결론에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기울였다. 혼자가 되기 싫으면 말을 하지 그랬냐는 거다? 어린아이 대하는 듯 한 말에 타스키가 눈을 부릅떴다. 이 멍청이가! 제 마음도 모르고 살랑거리는 바람이 얄미웠다. 손 안에 들어온 손목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그제야 화들짝 놀라며 떨쳐낸다. 잡혔을 때와 마찬가지로 쳐내어진 붉게 달아오른 제 손목을 문지르며 치치리는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젠장, 젠장, 젠장.」
「어쨌든 괜찮다는 거다. 그럼 같이 가볼까.」
「하… 그래, 가자고.」
본인이 먼저 이야기해놓고 자신이 억지로 끌고 가는 것처럼 말하는 타스키에 빙글 웃었다. 타스키, 어린애 같단 거다. 이번엔 정말 놀리는 어감에 타스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야! 화난 듯 노기 어린 목소리에 치치리가 제 가사를 붙잡고 앞으로 뛰어갔다. 그 뒤를 자신의 부채를 들고 결판을 내겠다는 표정으로 타스키가 쫓기 시작했다.
「이봐, 장난이라는 거다! 그거 내려놓으라고!」
「장난이 아니라고, 거기 서라구!」
뒤를 돌아보면 누군가 있다, 라는 것은 꽤 좋은 기분이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라서 일까? 치치리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즐거워 보였다. 이대로 계속 함께 있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치솟는 불길을 옆으로 가볍게 뛰어 피했다. 그보다, 진짜로….
「미, 미안하다라는 거다!」
「그런다고 놓칠 줄 알고?!」
「안 된다구! 타스키! 진짜로 너랑은 다신 농담 안할 거야!」
「농담이 아니라 놀림이겠지!」
자신이 치치리에게 가진 감정이 무엇인지 타스키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가 가진 감정이 자신과 같지 않다는 것도, 전부. 어차피 이루어질 수 없는 감정이고, 전해지지 않을 마음이기에 그와 대면해도 예전과 같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치치리를 만나는 게 두려웠다. 혹시나, 자신의 마음을 들킬까봐. 미아카 때처럼 그렇게 되어버릴 지도 몰라서.
「…젠장, 어째서… 저런 녀석이냐구.」
─
미포 1894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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