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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binogi/N

[초대밀레] 놓여 있던 쪽지

* 현재와 에린을 오갑니다. 밀레시안이 자신이 밀레시안임을 초반에 모릅니다.

* 대화가 기울임으로 표시 된 부분이 있습니다. 모바일에선 안 보일 수도 있어 혼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덩그러니 놓인 쪽지 한 장을 주워들어 조심스럽게 펼쳐보았다. 누가 보냈는지, 받는 이는 누구인지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체 그저 내용만이 쓰여 있는 작은 쪽지였다.

 

잘 지내고 있나요?

 

가지런히 놓인 글자들은 정갈한 필체로 쓰여 있었다. 누구에게 보낸 것일까? 의문을 가지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어느샌가 그 아래에 붓 펜을 들어 답을 적고 있었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당신은 잘 지내고 있습니까?

 

 

 

 

[초대밀레] 놓여 있던 쪽지

 

 

 

 

머리 위로 떨어진 나뭇잎을 털어내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시끄럽게 울리고 있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액정 위로 뜬 이름을 확인하곤 엄지손가락으로 거절을 눌러버리고 다시 옆에 집어던지듯 내려놓았다. 이제 곧 울리겠지. 한숨을 내쉬며 속으로 작게 3, 2, 1 하고 카운트다운을 해본다. 정확히 1이라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진동을 울려댔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메신저가 온다. 언제고, 답장이 올 때까지 계속해서. 얼굴을 찡그리고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풀들이 움직이는 작은 소리가 들려와 귀를 기울였다. 자세히 듣지 모르면 모를 소리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려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보았다.

 

역시!”

 

풀들 사이에 떨어져 있는 색 바랜 색의 종이를 집어 들었다. 선을 맞춰 접은 듯 깔끔하게 접혀 있는 종이를 펼치면서 떨리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종이의 안에는, 한 번도 보지 못 했던 나라의 언어가 적혀있었다.

 

대학교? 그건 무슨 곳이지? 학교인 것은 알겠다만, 여기는 대학교란 것이 없다.

 

그저 글씨임에도 귓가에 딱딱하게 울렸다. 끝까지 읽고 나자 이내 종이에 적혀 있던 글씨는 누군가 지워버리기라도 한 듯 저절로 사라져 버렸다. 비어버린 종이를 보며 가방 안에서 볼펜을 꺼내들었다.

 

여기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가 있어요. >>>대 순이고, 우리는 8살부터 공부를 배우죠. 그중에서 대학교는 20살부터 23살까지 보편적으로 다닙니다. 거긴 대학교가 없다니신기하네요. 그럼 그쪽은 무슨 일을 하시나요?

 

볼펜을 입에 물고 다 적은 종이를 다시 똑같이 접어 놓여 있었던 곳에 내려놓았다. 잠시 후에 종이는 바스러지듯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여기가 아닌 다른, 자신이 대화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갔겠지.

자신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언어를 사용하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 종이로 대화를 하는 것에 빠져 있었다. 이 기묘한 인연은 작년 여름, 자신이 사귀던 연인과 헤어진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눈앞의 커다란 나무는 학교가 설립된 날부터 함께한 나무들 중 하나로 교내에서 유명하다면 유명한 나무였다. 연인끼리 헤어지는 장소가 바로 여기였기 때문이다. 자신 역시 이 나무 앞에서 헤어졌고, 우울한 마음에 공책의 종이를 찢어 연인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었다가 그 행동이 우스워 아까 종이가 사라졌던 자리에 집어던졌었다. 그날의 마음은 실연의 상처 아닌 상처로 들쑥날쑥했던 터라 그 감정을 떨쳐버릴 겸 그대로 잠깐 졸았었는데 잠에서 깨고 집에 가려고 정리를 하다가 던져뒀던 종이를 버리려고 자리를 확인하다가 발견했었다. 아무렇게나 접어 던졌던 종이는 그 사이에 색이 바랬는지 누런색이 되어 있었고, 무심결에 다시 펴 봤다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썼던 글자는 어디 가고 이상한 언어로 글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당황한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 이상한 언어를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이 제일 당황스러웠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적힌 글을 다 읽고 나니 이번에는 그 글자들이 눈 녹듯 사라져버리는 게 아닌가. 무언가에 홀린 듯 비어버린 종이에 다시 글을 적어 떨어져 있었던 곳에 내려놓자 이번엔 종이가 사라져버렸다. 글씨처럼,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이.

그때부터였다. 이 이상하고 기묘한 대화의 시작은. 아직도 울리고 있는 핸드폰을 줍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이후로 쪽지는 항상 보내고 정확히 24시간, 하루 뒤에 생겨났다. 왜인지는 몰랐다. 애초에 이렇게 사라지고 다시 생기는 이유조차 몰랐으니까.

 

여보세……

- 장난하냐!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돼? ? 너 또 무시했지? 그런 거지?

아니, 자다가 일어났는데.”

- 지금 내 앞에서 거짓말하냐? 그럼 나무 밑에서 노닥거리던 건 어디의 누구실까!

…….”

- ? ~? 아아~?! 죽을래?

아니.”

 

다 지켜보고 있었던 건가? 남은 손으로 뒷머리를 긁적이며 주위를 둘러봤다. 전화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 섞이는 시끄러운 소리들과 바람소리는 밖인 게 분명했다. 돌아다니는 사람들 속에서 어렴풋 익숙한 모습이 보인 것 같다.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고.”

- 장난하냐? 요 근래 니가 있는 곳이 거기 말고 더 있었나?

장난하냐? 요 근래 니가 있는 곳이 거기 말고 더 있었나?”

 

동시에 울리는 목소리에 핸드폰을 내려 전화를 끊었다. 볼 때마다 신기한 은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청년이 오만상을 쓰고 다가왔다. 뒤로 보이는 그가 맨 묵직한 가방에 고개를 저으며 웃어 보였다. 여행을 다녀온다더니, 오늘이 오는 날이었나 보다.

 

됐고. 거기서 뭐하냐.”

잤는데.”

아 다 봤다고!”

불법투기했는데.”

말을 말자. 오늘 뭐 하냐? 이 몸이 오셨는데 당연히 약속 같은 건 없겠지?”

 

약속은 없는데 할 일은 있어. 자신의 말에 폈던 인상을 다시 구긴 그가 사람 잡을 흉흉한 기세로 노려보기 시작했다. 여행을 갔다 왔으면 매일 따라다니던 여자애한테나 가지, 왜 내 앞에서 이러고 있을까.

 

바빠. 디바랑 놀아.”

디바 오늘 약속있다 했다고! , 매정하게 버리기냐!?”

 

왁왁 대는 걸 뒤에 두고 발걸음을 옮겼다. 화를 내면서도 딱히 자신을 잡을 생각은 없는 듯 뒤를 돌아 눈을 마주치니 손을 들어 흔든다. 웃으며 마주 손을 흔들어주고 집으로 향했다.

 

남자는 게이트 앞의 돌 위에 걸터앉았다. 지나가던 이들이 그를 향해 예의를 갖추며 인사해오는 것에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저었다. 보초를 서고 있던 기사들은 그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상황이 익숙한 듯 자신들끼리 이야기를 나눈다. 남자의 시선이 그들을 지나쳐 조금 떨어진 나무로 향했다. 40일에 한 번, 나무 아래에는 누가 뒀는지 모를 종이가 놓인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알기론 이곳의 언어가 아니라는 것. 내용들도 확실히 자신이 모르는 것들이 많았다. 그리고 희한한 것은 그 종이는 다른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외려 물어보았다가, 자신이 이상한 취급을 받기도 했다.

 

아직인가.”

단장님! 좋은 오후입니다. 오늘도 기다리고 계십니까?”

아르후안의 조장인가? 자네는 내 말을 믿나 보군.”

단장님이 언제 거짓말하신 적 있으십니까.”

그런가? 네 말대로다. 오늘이 40일째니까.”

그래도 들을 때마다 신기하네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수고하게.”

 

붉은색의 망토를 날리며 아르후안 조 조장이 게이트 안으로 사라지자 남자는 다시 나무로 고개를 돌렸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풀들이 밟히는 소리가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에 묻히고 나무에 기대어 앉은 남자의 손에는 색이 바랜 종이가 들려있었다. 투구에 가린 눈매가 즐겁다는 듯 가늘어졌다. 익숙한 동작으로 접힌 종이를 펼친 그는 글을 다 읽고 나서 사라지는 글씨 역시 전혀 이상하지 않은 듯, 가져왔던 펜을 들어 적어내려갔다.

 

그렇군, 계급처럼 나뉘어있는 건가. 일이라일이라면 일이겠군. 기사단의 단장을 맡고 있지. 그곳에도 기사단이 있나?

 

사라져가는 종이를 바라보며 남자는 다시 40일인가, 하고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기다림은 길고 즐거움은 순간이었다. 언제나처럼 컴퓨터의 전원을 키면서 자리에 앉는다. 이미 주위는 휴강에 길 잃은 학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01로 이루어진 세계에 빠져 있었다. 컴퓨터가 켜지고 친구의 추천으로 시작하게 된 게임에 접속했다. 스토리가 마음에 들어 처음부터 귀찮음을 무릅쓰고 다 깨와, 이제 이번에 나온 파트만 다 깨면 끝이었다.

 

너 또 그 게임하냐.”

. 맞아, 여기에 너랑 비슷한 캐릭터도 있더라.”

, 그 영웅 캐릭터? 디바랑 비슷한 캐릭터도 있던데.”

흐음신기하네. 꼭 게임에서 튀어나온 것 같다.”

 

어깨를 으쓱한 그가 본인의 모니터 화면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을 보며 역시나 퀘스트를 깨기 시작했다. 기사단 퀘스트그러고 보니, 같이 쪽지를 하던 그 사람도 기사단의 단장이라고 했었는데. 알반.

 

?”

.”

, 아니.”

 

갑작스러운 소리에 되물어오는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젓고 다시 게임에 집중했다. 그 뒤로도 계속해서 그 사람과 종이를 주고받으며 친해졌다. 만날 수는 없었어도. 생각해보니 그랬다. 에린이라는 세계에 알반 기사단, 그리고 단장. 항상 투구를 쓰고 다닌다고 했다. 이제 바빠져서, 더 이상 이야기를 못 나눌 거라고도 했었다. 게임 속의 자신도 에린이라는 세계에 있었다. 알반 기사단의 단원들과 사도를 잡으면서. 인벤토리를 열어 퀘스트 아이템을 확인해봤다. 초대 단장의 목걸이는, 정말? 설마.

자리를 비운다고 이야기하고 밖으로 나와 학교로 향했다. 조금 있으면 종이가 생겨날 시간이었다. 나무 아래에는 남자와 여자가 서 있었다. 팔을 붙잡은 남자를 뿌리치며 차가운 얼굴로 여자가 자신을 스쳐 지나갔다. 자리에 가만히 서서 여자의 뒷모습을 보고만 있던 남자가 결심한 듯 뒤쫓아 뛰어간다. 텅 비어버린 나무 앞에서 나는 가만히 눈을 깜박였다.

 

아니겠지, 설마.”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고는 했지만 정말 설마 싶었다. 게임 속의 세상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정확히 시간이 되자 생겨나는 종이를 빠르게 주워들었다. 전과는 다른 떨림과 설렘으로 펼쳐 읽어간 종이는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져내렸다.

 

미안하군, 이번이 마지막 답장이 될 거다. 나는 악으로부터 내가 있는 곳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봉인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결국 네 이름은 전혀 모르고 끝이 나는 군. 즐거웠다, 누군지 모를 이. 잘 지내길 바라마.

 

자신은 오늘, 게임 속에서 초대 단장의 목걸이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었다. 목걸이의 주인인 초대 단장은 분명 아발론 게이트를 선지자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그 안으로 들어가 봉인했다. 정말로, 설마가 사람을 잡아 버린 거다.

 

뭐야이거. 뭐냐고.”

 

게임의 에린이란 세계에서 나는 밀레시안, 그리고 현실에서는 대학교를 다니는 평범한 학생. 당신은 게임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기사단의 단장.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주워들고 주머니 속에서 볼펜을 꺼내 아마도 상대가 더 이상 보지 못할 글을 적어 내려갔다.

 

왜 희생을 해요? 안돼요. 다른 방법이 있을 거예요. 조금 더 생각해봐요. 미래에, 결국은 허사가 될지도 몰라요.

 

적고 있던 종이가 손에서 미끄러졌다. 다시 주우려고 고개를 숙인 시야에 사라져가는 게 보였다. 안돼, 아직 덜 적었어. 외칠 새도 없이 허망하게, 그저 사라져버린 종이를 바라만 보았다.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르는 거였는데. 저쪽 세계에서는 40일이라고 했다. 40일이면, 그 안에 봉인이 되고 끝나버릴 시간이었다.

 

안돼젠장, 이게 뭐야, 이게

 

기회가 없어졌다고, 생각했다. 내일이 되어도 안 올 거라 생각했던 종이가 다시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마지막이어서? 이제 더 이상 못 만날 테니까? 이런저런 의문이 생겨났다. 이 종이는 어떻게 이렇게 빨리 전해진 걸까.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잡아 펼쳤다.

 

희한하군. 하루도 안 지났는데 생겨나다니. 걱정은 고맙다. 하지만 그뿐이다. 네 말을 들어주지 못할 것 같아 미안하군. 좀 전에도 말했지만 잘 지내도록.

 

. . 주저앉듯 무너져 내렸다. 손안에 쥔 종이가 구겨지는 것도 모르고 있는 힘껏 주먹을 움켜쥐었다. 당신은 결국 그 어둠 속에 홀로 남겨질 거라고. 아무도 없는 곳에 외롭게. 그리고 봉인은 그렇게까지 해서 막으려 했던 선지자들이 풀게 되는데! 어째서! 깨물린 입술에서 비린 맛이 났다.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속에서만 들끓는 감정 대신에 새어 나오는 피에 눈을 감고 천천히 종이에 글을 써 내려갔다.

 

결국 선지자들이 그 안에 들어가게 되는데. 알아요. 이제 이 글을 못 읽겠죠. 그래도, 혹시나, 나중에 당신이 볼 수 있을지도 몰라요. 나는나는 밀레시안이에요. 당신의 세계에서 나는 밀레시안이에요.

 

언젠가 만날 수 있을까 했다. 그저 작은 종이에 적힌 글이었지만 그걸 읽는 순간만큼은 자신이 꼭 살아있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연인과 사귀면서도 느끼지 못 했던 설렘이 항상 옆에 있었다. 달콤한 초콜릿이 입안에서 녹아버리듯, 그런 기분이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눈가가 시렸다. 아팠다. 코 끝이 찡하고, 감정이 목에 거미줄을 치고 숨을 막아버렸다.

나무 아래에 덩그러니 홀로 놓인 종이가 불에 타듯 모서리부터 천천히 없어지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불어온 바람에 제대로 접히지 않은 듯 펼쳐진 것은 글자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짓밟힌 풀들만이 남아있는 자리에 종이는 이제 자신을 봐주는 이가 없는 곳으로 사라져버렸다.

 

이상하죠. 그저 종이로 주고받은 이야기였고, 진짜인지 아닌지도 몰랐는데.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인데요. 근데, 그런데도좋아했어요, 좋아하고 있어요.

 

 

 

종이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을 볼 이가 없는 곳에 떨어져 내렸다. 검게 드리운 하늘 아래에는 더 이상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듯 비어버린 커다란 게이트의 문이 서서히 닫히고 있었다. 바람이 불고 비가 와도 종이는 마치 다른 세상의 것인 듯 젖지도 날아가지도 않고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자신을 봐줄 이가 없었음에도, 언제까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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